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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라 그리고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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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신 2:24)’


앞에서는 싸우지 말라 했는데, 여기서는 싸우라 했다. 읽는 분들이 갈등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신학적 충돌이 있는 부분이다. 


이 말씀은 가나안 땅 밖의 종족들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고, 가나안 땅 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순종을 통해서 그 싸움을 꼭 이기게 하신다. 그러니 경계선을 알아야 한다. 믿는 사람들은 이 경계선을 알아야 쉽게 땅을 차지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신 2:19)’


암몬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다. 비록 타락했어도, 또 원수처럼 괴롭힌다고 해도 싸우지 마라. 가만 두어라. 하나님이 알아서 멸하실 것인데 싸우면 피를 보는 결과만 있을 것이니 가만 두라고 하신다. 그래서 가라지는 뽑지 말고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 하셨다.

가나안 밖의 사람과는 싸우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24절 보라.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신 2:24)’


가나안 안에서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구원 얻은 후에 우리의 삶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순종하여 밟고 진격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순종하면, 그 땅(기업)을 반드시 차지하고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다. 


가나안 바깥쪽과 안쪽의 경계선의 차이가 우리에게 주는 심오한 메시지가 있다. 구원에 관한 말씀이다. 구원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조건이나 행위나 노력이 필요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은혜로 구원받은 후,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예수님도 ‘내가 너희에게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전쟁)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자마자, 항상 무지개빛과 햇빛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400여년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홍해를 건넌다. 그리고 아말렉과 대전쟁을 치른다. 홍해를 건넌 후(구원 받은 후), 만난 전쟁이다.


구원 얻은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내면과의 싸움이다. 새 생명 얻고 난 뒤, 옛날 구습을 벗어버려야 하는 치열한 싸움이다.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싸움이 많이 있다. 날마다 옛 습관을 벗는 싸움이다. 날마다 갈등이 있고 고뇌가 있는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가나안의 삶은 천국의 모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19-24)’


이방인 같이 살지 말라는 것이다. 생명 없는 자 같이 살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사람으로 지어져 가라는 것이다.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지어져(공사중) 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군대 가면, 가는 날 속옷까지 다 벗기고 국방색 옷을 입힌다. 그러나 군복을 입힌다고 군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엔 군복만 입었지 걸음걸이, 경례하는 것이 엉망이다. 그런데 6주 훈련을 받으면 군인 같이 변한다. 눈빛과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 4:25-31)’


하루 아침에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옛 습관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육체의 소욕이 있기에 거머리처럼, 그 소욕이 질기게 꿈틀거린다. 육체의 소욕을 매일 죽이지 않으면 틈만 나면 살아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날마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 


가나안에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이 제일 많이 한 것이 ‘진멸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안에 올라오는 죄악의 소욕을 진멸해야 한다.


육체의 소욕을 진멸하지 못한 사람이 사울 왕이다. 사울도 처음엔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고 저주받아 죽었다. 


우리 신앙에는 아는 영역과 믿는 영역이 있다. 설교를 들고 감격하여 아멘하고 결심한다. 말씀대로 살겠다 결단한다. 그러나 결단한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육체의 소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마다 진멸해야 결심대로 살 수 있다. 날마다 뽑아내고 제거해야 성도로 살 수 있다. 그래야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된다. 이것이 온전한데까지 이르는 싸움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100%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그리스도 안의 삶은 100%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싸울 대상이 있고, 싸우지 말아야 할 대상을 구분해서 살기 바란다. 가나안 안에서, 구원받은 삶 안에서, 내면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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