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로 가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마가복음 14:27)’
이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이다. 목자 된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양들이 흩어질 것을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고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외쳤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마가복음 14:28)’
이는 베드로의 단호한 의지와 신념이 담긴 고백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단호한 의지대로 살지 못했다. 베드로의 자기 신념(자기 확신)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예수를 부인한다. 그렇기에 신앙생활은 자기 신념을 믿는 것도 아니고, 자기 확신을 따라 행동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마가복음 14:30-31)’
자기 확신(신념)을 믿고 있다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초창기 베드로의 열심은 인간적(인본주의적) 열심이었다. 인본주의적 열심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결정적일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가 아니라 ‘자기 영광’을 위해 열심을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씀을 유심히 살펴보면 모든 제자도 베드로와 같이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 혼자 얘기한 것 아니다. 모든 제자들의 수준이 베드로의 영적 수준과 같았다는 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가복음 14:28)’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뒤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겠다는 말씀이다. 갈릴리가 어디인가? 갈릴리는 이방의 땅이다. 예수님이 자란 곳이 나사렛인데, 나사렛이 갈릴리였다. 예수님은 이방의 땅인 갈릴리 사람으로 불리워졌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15-16)’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흑암과 사망의 땅 그리고 그늘진 땅이었으며, 사람들은 갈릴리를 버려진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슬프고 억울하고 한 맺힌 땅이었다. 그러나 갈릴리는 십자가의 현장이다. 십자가는 조롱과 천대와 멸시와 박해의 상징이었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겠다는 것은 예수님이 먼저 십자가에서 죽으시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그림이었다. 내가 먼저 십자가를 통과하리라.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일꾼의 첫 번째 자격이 무엇인가? 십자가를 통과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그리스도의 일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일을 위한 일꾼이 아니다. 영적인 일을 위한 일꾼(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꾼)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고 하셨다. 먼저 십자가를 통과하시겠다는 것이다. 주님의 일인 구원사역은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구원시키는 일)은 십자가 밖에 없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구속 사역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솔직히 질문해보아야 한다. 나의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었는지. 내가 십자가를 통과하여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일원으로 되었는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의 자아가 부서졌는지.
신앙 생활의 무서운 적은 상식적이고 교양있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대체하는 것이다. 상식적이고 교양있는 삶을 사는 무서운 종교인이 많다. 죄도 짓지 않는다. 생활도 반듯하다. 니고데모와 같이 도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사회인으로서는 훌륭한 삶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것을 뛰어 넘는 영적체험(중생체험)을 통해 거듭난 삶을 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 한없이 절망하고 회개하는 거듭난 체험이 있어야 영적 각성이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 말씀 속의 베드로는 아직 이 경험이 없다. 지금까지 니고데모식으로 살아왔다. 열심은 있었으나, 중생체험이 없었다. 베드로는 지금 예수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세속적인 야망이 있었다. 기질적으로 나서기 좋아하니까, 매우 열정적으로 덤벼들었던 것이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자 했다.
예수님이 이러한 베드로를 위하여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먼저 십자가를 통과하겠다는 것이다. 너도 십자가를 통과하여 사람 살리는 구원의 사역자가 되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십자가를 통과한 그리스도인 되기 바란다. 십자가를 통과할 때, 자기 십자가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십자가 없이는 살지 못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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