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사람에게 영혼이 먼저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내 영혼을 만지소서’라고 간구해야 한다. 사람은 이성적인 것 같지만 비합리적일 때가 많고, 똑똑한 것 같지만 어눌하고 어리석을 때가 더 많다. 올 한 해 모든 이들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영혼 깊은 곳까지 터치해주시길 기도한다.
2023년 연초. 우리 인생의 뱃머리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시작하면서 영혼에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발견하진 않는가? 자신의 삶에 100%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면 인생의 목마름이 해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이요 또다시 생기는 인생의 목마름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의 삶의 방식대로는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경을 보면, 얕은 물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이야기가 있다. 베드로는 밤을 새워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허전한 마음으로 빈 그물을 털며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 인생과 흡사하다. 인생의 빈 그물을 들고 손질하는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고기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분주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손에 잡히는 것은 흘러가는 세월뿐이고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5:4).
예수님은 빈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말씀하셨다. 인생의 얕은 물가에서 그물 던지는 것으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인생의 얕은 물가에서는 절대적으로 만족이 없다는 것이다. 한 번쯤은 인생의 깊은 곳으로 가야만 그토록 오랫동안 추구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의 뱃머리를 돌려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실 베드로는 오랫동안 어부로 살아오면서 쌓인 자기의 경험과 상식에 의하면 새벽에 바다 깊은 곳에는 고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벽에는 모든 물고기가 물가로 나오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한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5:5)
베드로는 그날 새벽 시간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졌다. 새벽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깊은 곳’으로 간 것이다. 자기의 지식과 경험과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갔다. 그러자 상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기적같이 신비한 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힌 것이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신 분이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날 새벽에 알게 된 것이다.
수고하는 것은 귀하다. 노력은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얕은 곳에서 하는 수고는 점점 나를 지치게 하고 점점 나를 소진시킨다. 그렇기에 한 번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은혜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힘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신앙 세계는 이처럼 깊이가 있는 세계이며 본질의 세계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이 깊은 곳에서 역사하시며 우리의 영혼을 만져주신다. 하나님의 손길이 사람의 깊은 곳, 영혼을 터치하실 때 사람이 살아나며 회복되고 치유된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 중풍 병자의 친구들은 예수님께 병자를 데려가고 싶었으나 사람들이 많아 도저히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붕을 뚫고 중풍 병자를 달아 내려 예수님 앞에 데려갔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한 가지, 중풍 병자가 낫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다. 육체의 병, 중풍은 언급도 하지 않으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2:5)
예수님은 육체의 병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영적 질병을 주목하신 것이다. 먼저 영혼을 터치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영적인 병이 육체의 병을 있게 하는 본질적인 뿌리라는 것을 아시기에 바로 그곳으로 파고 들어가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길이다. 예수님은 영혼의 깊은 곳으로 오신다. 내 영혼의 깊은 곳으로 오셔서 나를 만지시고 회복시키셔서 살아나게 하신다.
만일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중풍병아 물러가라” 하시며 육체만 고쳐주셨다면 이 병자는 그 순간은 평안할 수 있어도 그의 죄 문제는 계속 남아 있어서 그의 영혼을 괴롭혔을 것이다.
영혼의 참된 의사이신 예수님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욱 사랑하시기 때문에 먼저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영혼을 고치시고) 범사가 형통하게 하신다. 환자가 잠시 불편하더라도 주님은 항상 깊은 데로(영혼의 깊은 속으로) 향하신다. 예수님의 깊은 영혼의 치유가 바로 전인적 치유다.
새해에는 내 영혼의 속사람이 살아나고 전인적 삶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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